횟집 수족관 깨지자 ‘마을 회 잔치’ 열렸다
[새해 기획] 사람과 사람 잇는 대구 안심마을 ①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어울려
네 일·내 일 구분없이 사는 곳
고달픈 시대, 연결의 의미 묻다
왜, 지금 안심마을인가
멀리서 볼 때, 대구와 대구 사람들은 단일한 무채색으로 비친다. 그것이 제대로 사실에 입각했든 그렇지 않든, 신기방기한 ‘그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나면 눈부터 비비게 될 수도 있다.
‘안심마을’은 지역 공동체를 일궈가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대구라는 도시의 동쪽 변두리에 있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그들이 대구의 다수는 아니지만, 소외된 타자는 더욱 아니다. 누구보다 자기주도적인 주체다.
그들이 누구인지 압축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흔히 ‘공동체’라는 표현에서 떠오르는 경건하고 결사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모여 놀기 좋아하고, 단단한 조직도 없다. 설명의 어려움은 그들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분법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혼종적인 유기체가 등장하는 공상과학 영화를 상상하면 혹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어렴풋이 한 지점을 바라보던 이들이 서로의 꿈을 섞은 게 발단이었다. 주민들에게도 꿈 얘기를 들려줬다. 주민들이 호응해 나서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주민들은 새로운 필요를 잇따라 떠올렸다. 그때마다 일을 벌였다. 삶과 촘촘히 연결된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 등이 수십개 배양됐다. 주민들은 마을 활동가로 변신했다.
안심마을 사람들은 ‘사이’와 ‘차이’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꿈꾸며 20여년을 또박또박 걸어왔다. 그 꿈에 한걸음만 더 다가가려 해도 상상력, 열정, 자원, 연대가 필요했다. 일상이 ‘운동’과 ‘생활정치’의 최전선이었다. 그 꿈들이 싹트고 자라온 시간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기쁨과 미련의 오늘을 될수록 가까이서 보고 들어 기록해보고자 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가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라면, 대의제 정치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새해를 맞아 안심마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다. 그들의 이야기가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분법의 세계를 낯설게 보도록 영감을 자극할 수 있길 기대한다. 컬러 티브이가 흑백 티브이를 대체하자 화면 바깥 세상의 빛도 훨씬 다채로워졌듯이.
노인의 안경이 날아갔다. 급반전이었다. 20대 발달장애인 태용(가명)의 행동은 애초 평화유지군의 그것에 가까웠다. 태용은 박인규(안심협동조합 이사장)에게 언성을 높이는 노인을 달래듯 감싸안았다. 박인규가 “고마 괘않다” 해서 포옹을 풀었지만, 그 뒤로 전개되는 양상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적대를 더욱 노골화했다. 태용이 노인에게 소리쳤다. “빨리 가!” 노인이 새되게 되받았다. “니는 또 뭐꼬?” 태용의 크고 두툼한 주먹이 노인을 향했다. 말릴 틈도 없었다. 지난 10월21일 대구시 동구 안심1동(행정동) ‘안심마을 축제’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누구나 축제를 반기는 건 아니다. 어떤 축제는 누군가의 혐오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6월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해산하려고 행정대집행까지 시도했다. 안경이 날아간 노인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쏟아낸 장광설의 초점도 태용의 ‘돌발행동’이 아니었다. 자기 사는 아파트 앞 반계근린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그 축제였다. 이태 전부턴가, 노인은 축제 때마다 나타나 “시끄러워 못 살겠다”며 악다구니를 했다. 청소년들이 여는 축제나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의 다른 이름이 ‘청소년 문화의 거리’라는 사실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노인에게 축제는 다만 ‘소음’이었다. 소음은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노인과 축제의 불화는 운명적이다. 어쩌면 노인은 축제의 소음을 오직 데시벨로 감각할 수밖에 없는 귀를 가졌는지 모른다. 소음은 온도로도 측정된다. 축제의 소음은 뜨겁다. 뜨거운 소음으로 달궈지고 부풀어 오른 공기는 노인뿐만 아니라 축제를 반기고 즐기는 이들 사이에도 크고 작은 사건을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적대든 환대든, 축제와 사건은 불가분이다. 때론 물과 고기처럼.
사건이 터졌다. 수족관이 박살 났다. 안심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 ‘땅과 사람 이야기’는 반계근린공원에 바로 면해 있다. 매장 옆에는 횟집이 있다. 여느 때처럼 엄마 따라 매장에 놀러 온 기정이 횟집 수족관을 응시했다. 평소보다 물고기가 그득했다. 주말 저녁 장사를 앞둔 때였다. 여덟살짜리 발달장애인의 생태주의적 측은지심은 말릴 틈도 없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큰 돌덩이가 날아갔다. 매장에 있던 이들이 세숫대야든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나와 바닥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담았다. 시나브로 축제도 시작되고 있었다.
수족관 깨트리자 회 파티, 십시일반 주민들
축제는 사건을 발생시키지만, 일방향만 성립하는 건 아니다. 사건도 축제를 발생시킨다. 매장의 발달장애 청년들을 늘 봐왔던 횟집 주인은 사건을 수용하는 품이 넓었다. 선선히 “원가만 받고 저녁 장사를 접겠다”고 했다. 기정의 부모는 “저희가 값을 치를 테니 회로 나눠 먹자”고 했다. 단톡방에 소식이 올랐다. 누구는 50명이 넘었다 하고 누구는 100명 어름이라 하는데, 양이 모자라 추가로 회를 주문해야 했다. 십시일반 지갑을 열었다. 기백만원의 비용에서 기정 부모가 낸 돈은 10만원이었다. 아이의 돌발행동은 주말 밤 떠들썩한 축제로 막을 내렸다.
축제도 사건도 사람의 일이다. 이날 사건 현장에 왁자하게 모여든 이들과 축제에 매번 질색하는 노인을 가르는 건 소음에 대한 민감도만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양쪽은 ‘관계’가 다르다. 축제의 소음도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소음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대한 태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이다. 수족관이 박살 난 사건을 흥이 넘치는 생성의 축제로 바꿔놓은 이들은 자기들끼리의 관계를 ‘안심마을 사람들’이라 부른다. 안심마을 사람들은 ‘안심마을’에 산다.
안심마을은 지도 위에 없다.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다. 그렇다고 율도국이나 네버랜드 같은 상상의 장소도 아니다. 지리적 기반이 없진 않다. 흔히 ‘안심지역’이라 불리고, 행정동으로 안심1·3·4동과 혁신동에 해당하는, 대구시 동구에서도 맨 동쪽 지역이다. 지하철 노선으로 보면 1호선 율하역-신기역-반야월역-각산역-안심역을 따라 위아래로 걸친다. 안심마을은 이 지리적 기반 위에 점으로 찍히고 선으로 얽힌, 점묘화나 그물 같은 또 하나의 겹으로 ‘실재’한다. 물론 이 정도 설명만으로 안심마을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직 안심마을 사람들 말고 없다.
느슨하되 탄탄하게 연결된, 탈근대적 마을
안심마을 사람들은 안심마을만큼이나 자신들을 설명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구성원이 몇이냐 물으면 머리를 긁적이며 어림셈을 하는데,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수족관을 깨뜨린 기정이 안심마을 사람인지 물으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노인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마을 사람이 아니다. 태용에 대해서는 설명이 길어진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급여를 주는 장애인 복지일자리로 2년 전부터 ‘한사랑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센터’에서 일하는데, 사는 데가 멀고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다. 연결돼 있되 느슨하다. 그런 태용이 주말에 열린 마을 축제에 부러 놀러 와 사건까지 일으켰다. 연결은 한층 탄탄해졌다.
사건은 더러 관계망의 도달 속도와 범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날 축제는 안심마을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가장 유서가 깊다. 21회를 맞은 지난 5월에는 축제 전날 갑자기 비 예보가 떴다. 축제 장소는 안심근린공원으로 예고돼 있었다. 장소를 급히 실내로 바꿔 단톡방에 올렸다. 이튿날 400~500명의 아이들이 바뀐 장소로 찾아와 축제를 즐겼다. 발달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의 대표이사 윤문주는 “발달장애아가 혼자 놀러 나갔다 돌아오지 않으면 단톡방에 알린다. 머잖아 연락이 온다. 이 일대에서 우리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300~400명쯤 될 것이다”라고 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저 사정이야말로 안심마을이 어떤 곳이고, 안심마을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암시하는 역설적인 단서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을은 전근대적 마을도 근대적 마을도 아닌, 탈근대적 마을이다.” 안심협동조합 10년사를 책으로 정리한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2023)에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전 연세대 교수·선흘 볍씨마을 주민)이 쓴 추천사의 한 대목이다. 전근대적 마을이 제정일치의 집단적 공동체였다면 근대적 마을은 지방행정의 최하위 단위일 터이다. 안심마을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실재한다. 점을 찍어가다 보면 어느덧 탈근대적인 점묘화 한편이 완성돼 있을지 모른다.
비장애인의 시공간 함께 누리는 장애인들
안심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눈치챘겠지만, 발달장애인이 많다. 윤문주에게 마을에 대해 정의해보라 했다. “비장애인이 일하는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비장애인이 누리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누리는 발달장애인을 상상해보자. 그게 바로 마을 아닐까.” 윤문주의 정의는 안심마을의 복잡다단한 면과 층위를 모두 담기에 벅차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정의가 율도국이나 네버랜드 같은 이상향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상상에만 갇혀 있을 공산은 희박하다. 무시로 출몰하는 발달장애인들은 그 확연한 징후다.
안심협동조합의 ‘땅과 사람 이야기’에는 네명의 발달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한다. 30대 후반인 호철이 가장 연장자이고, 그다음이 민우다. 명준과 보라도 머잖아 30대 중반이 된다. 호철과 민우, 명준은 매장 일보다 배달이 주특기다. ‘로켓 배송’이 유통을 장악한 시대에 안심협동조합은 ‘느린 배송’을 표방한다. 셋은 ‘느린 배송 삼총사’라 불리고, 이들의 배달 가방에도 ‘느린 배송’이란 손글씨가 쓰여 있다. 이사장 박인규는 “느리게 가고, 더러 쉬어 가기도 하고, 더 드물게는 딴 데로 샜다가 가기도 하지만, 마침내 간다”고 일러줬다.
느리고 드물게 딴 데로 새지만, 마침내 가는
호철이 식재료를 담은 2단짜리 상자를 장수레(쇼핑 카트)에 싣고 ‘한사랑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처음 나타난 큰길 앞에서 화단 울타리에 걸터앉는다. ‘벌써 쉬어 가기가 시작됐나’ 짐작하는 사이 횡단보도 신호가 바뀐다. 호철이 냉큼 일어서 걸음을 재촉한다. 인도 위로 자전거나 손수레가 지나가면 옆으로 비켜서 “먼저 가요” 하며 수신호를 보낸다. 팔에 깁스를 한 여성이 마주 오자 “조심하라”고 당부도 건넨다. 어린이집 문 앞에 장수레를 세운 뒤 두차례로 나눠 상자를 옮긴다. 호철은 배달을 하며 마을을 주유하는 듯한데, 왕복 1500m를 오가며 물건 부린 시간까지 합쳐 26분 걸렸다. 로켓의 속도가 아니어도 그만이다.
호철은 스무살 넘어 한살 터울 동생 원호와 함께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의 성인기 자립 프로그램에 합류하며 안심마을 네트워크와 연이 닿았다. 사정이 더 나빠져, 어느 때부턴가는 머물 곳조차 마땅찮게 됐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사랑의 발달장애인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은 2010년 형제를 위해 시작됐다. 필요가 생기면 직접 만드는 게 안심마을 사람들의 대표적인 작풍이다.
현재는 그룹홈 건물 3곳에 12명의 발달장애인과 3명의 활동지원사가 산다. 형제는 그룹홈에서 7년을 살다가, ‘공터 사회적협동조합’이 2021년 8월 준공한 건물 ‘공터 2호’의 공유주택에 입주했다. 공터는 주택과 건물의 공동 소유와 운영으로 부동산의 공동자산화를 추구한다. 그룹홈이 발달장애인의 자립 지원에 방점이 찍혔다면 공유주택은 완전한 자립이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자의 방에 거주하며 거실 등을 공유한다.
장애인·비장애인 구별없이 미래를 만든다
이태 전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면서, 형제는 고아가 됐다. 삼촌은 홀로 상주를 맡고, 발달장애 조카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조문객 음식은 30인분을 준비했다. 단톡방에 부음이 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100인분의 음식을 더 준비하고, 빈소를 함께 지키며 삼일장을 치렀다. 130인분의 음식도 동났다. 사람들의 위로 인사에 호철은 “여기 엄마 아빠 다 있다”고 답했다. 형제와 함께 일하고 얼굴 대하며 어울리는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핏줄의 보완재로 그치지 않았다. 박인규는 “일방적인 시혜 관계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 겪으며 존재로 얽혀 있기에 그런 관계가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형제가 떠난 그룹홈은 민우와 명준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이들에게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연결과 순환이다. 민우와 명준은 둘 다 한사랑 어린이집 출신이다. 발달장애 전문 어린이집이었던 이곳은 2002년 이 지역으로 이사 와 몇 해 뒤부터 비장애 어린이들과 통합보육을 해오고 있다. 둘은 어려서부터 비장애 또래들과 어울려 마을의 일원으로 성장했고, 성인이 된 뒤에도 마을 안에서 일자리를 얻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명준은 안심마을 협동조합 매장에서 일하기 전에 자신이 나온 한사랑 어린이집에서 복지일자리 보조교사로 2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처음엔 낯설고 힘들었는데 어울리니까 행복”
보라는 넷 가운데 가장 신참이다. 자립도 늦깎이다. 장애인 영유아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 뒤에도 시설에서 생활하다, 2020년 한사랑의 체험형 자립생활주택에 들어갔다. 지난봄부터는 이 지역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토지주택공사(엘에이치)의 장애인지원주택에 입주를 신청해 배정받았다. 처음 시설을 나오려고 했을 때 그쪽 선생님은 자립생활이 불가능하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한사랑 장애인 지역생활 지원센터가 팔 걷고 나서지 않았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센터 선생님 김연희(‘반야월 행복한 어린이 도서관 아띠’ 전 관장)와 함께 가구도 사고 세간도 샀다. 이사한 날 이웃에 떡을 돌리고, 매장 사람들에게는 수건을 선물했다.
안심협동조합 4인방은 단지 피고용인이 아니다. 조합원이기도 하다. 매장은 조합원들이 장 보러 왔다가 차를 마시며 수다를 나누다 가는 사랑방이자 달마다 ‘행복음악회’ 같은 행사들이 열리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4인방은 조합원이자 마을 일원으로 비장애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발달장애인들만의 모임도 따로 열고, 먼 길 마다치 않고 매출 올려주러 오는 장애인 조합원들을 손님으로 맞는 곳도 매장이다. 보라는 “처음엔 낯설고 힘들었는데, 여러 행사도 하고 많은 분들과 어울리니까 행복하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낚시·그림·요리·바리스타·춤…동아리 활동도
매장은 이들 활동의 중심이지만, 이들의 활동 반경은 매장을 넘어 여러 갈래 뻗어 있다. 동아리 활동도 그중 하나다. 낚시, 그림, 요리, 바리스타, 난타, 춤 동아리 등에서 발달장애인 100여명이 활동한다. 명준은 춤 동아리다. 보라는 ‘자유’ 동아리인데, 대학의 자유전공학부와 비슷하다. 그때그때 회의를 거쳐 뭘 할지 정한다. 직장 다니는 이들이 많아 주로 주말에 활동한다. 마을 축제 때는 함께 주제를 정해 부스를 차린다. 술자리 회식도 잦다. 한번에 10여명씩 모이고, 송년회 때는 50~60명까지 늘어난다. 이 모든 게 당사자 자조조직인 대구발달장애인연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발달장애인연대는 직접 카페도 운영해 수익금을 노숙인들과 나눈다.
호철도 술자리에 가지만, 술보다 좋은 건 떡볶이와 순대다. “내 머릿속에 떡볶이하고 순대가 들어 있다”고 할 정도다. 그래도 돈을 모으려고 일주일에 세번, 한번에 2천원어치로 자제한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 주말이면 ‘한가족교회’에 간다. 맛있는 걸 주니 금상첨화다. 교회 간판에는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 ‘장애인 선교에 힘쓰는 교회’라고, 교회 승합차에는 ‘발달장애 가족과 함께하는 교회’라고 쓰여 있다. 호철은 일하는 동안에도 일 끝나고 뭘 할지 생각한다. 안심마을에는 목적 없이 들러도 놀다 갈 수 있는 거점이 곳곳에 있다. 발달장애인 지원 조직이 아닌 곳도 여럿이지만, 예외 없이 발달장애인들이 일한다.
편견·차이·구별짓기가 해체된 신기방기한…
대구 동구에는 2100여명의 발달장애인이 산다.(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 현황, 2022년 12월 기준) 인구통계에만 기대면, 안심마을의 발달장애인 수가 도드라지게 많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민들의 가시권에 들어오는 수는 확연하게 다르다. 제2, 제3의 태용·기정·호철·민우·명준·보라는 안심마을의 점묘화와 그물 위를 여기저기 오가며 망점과 그물코의 틈을 비집고 지리적 기반에까지 무시로 출몰한다. 출몰 자체가 사건이고, 사건의 연쇄는 일상이 된다. 그 일상에는 모여서 놀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안심마을 사람들의 소란한 축제가 시루 속 콩나물처럼 자란다.
지난 22일 저녁 반야월 새마을금고 본점 강당에서 발달장애인 송년회가 열렸다.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발달장애인 60여명과 비장애인들이 한기를 묻힌 채 왁자지껄 들어선다. 뷔페식으로 차린 음식 100인분이 동난다. 샤이니의 ‘링딩동’에 맞춘 진우의 댄스로 장기자랑이 시작된다. 무대 위와 앞에 춤꾼이 들어찬다. 안심협동조합 직원 보라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몸짓으로 관중의 호응을 유도한다. 시루 속 같은 강당 안에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차오르고, 안심마을 사람들의 2023년 마지막 축제는 정점을 향해 달아오른다. ‘전국노래자랑’ 저리 가라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안심마을의 단체와 사람들 ①
△안심마을 사람들: 안심지역 마을공동체의 관계망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관행적 이름이다. 2019년 7월 안심마을의 여러 단체가 결성한 연대·협의체의 이름도 ‘안심마을 사람들’이다. 안심마을 축제를 비롯해 여러 연대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안심협동조합: 2012년부터 로컬푸드 매장 ‘땅과 사람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소비자협동조합이다. 조합원 수가 1천명을 넘어, 안심마을의 사회적 경제 조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매장 안 커뮤니티 카페는 안심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행복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도 매달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발달장애인 4명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직원으로 일한다.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돌봄을 지원하는 사업을 총괄한다. 발달장애인이 안심마을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애주기별 지원 체계를 꾸준히 갖춰왔다. 10개의 단체와 기구, 조직이 있다. 이 가운데 몇곳을 소개한다.
●한사랑 어린이집: 장애·비장애 통합보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다. 발달장애아 수가 비장애아 수보다 6 대 4 정도로 많다.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의 뿌리라 할 수 있다.
●한사랑 장애인 지역생활 지원센터: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자립생활을 체험하면서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인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고, 정착을 지원한다.
●한사랑 공동생활가정: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4명씩 모여 자립생활을 하는 집이다. 한사랑은 직장 생활, 여가 생활, 관계 형성 등을 지원한다. 3곳이 운영되고 있다.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 도서관 아띠: 지역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작은도서관. 2008년 개관했다. 지역 주민들이 마을 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도화선이 됐다. 관장도 주민이고,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사서들도 주민이다.
△대구발달장애인연대: 발달장애인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당사자 단체다. 100여명이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친목 활동을 한다. 축제 등 안심마을의 많은 행사에도 단체 이름으로 참가한다.
△공터 사회적협동조합: 주택과 건물의 공동 소유와 운영을 통한 부동산의 공동자산화를 추구한다. 직접 건물을 짓고, 임대를 한다. 공터1호와 2호가 있다. 1호에는 발달장애인 지원단체 일부가, 2호에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사업장인 ‘카페 사람 이야기’ 2호 매장(1층)과 공유주택(2, 3층)이 들어와 있다.
●공유주택: 자립생활주택, 공동생활가정처럼 발달장애인의 주거공간이다. 비장애인도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며 입주해 산다는 차이가 있다.
△한가족 교회: 안심지역에 있는 작은 교회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는 종교 활동을 한다. ‘안심마을 사람들’에 들어와 있다.
△윤문주: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대표이사이자 한사랑 어린이집 원장이다. 2002년 한사랑 어린이집이 안심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안심마을의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박인규: 안심협동조합 현 이사장. 한사랑 장애인 지역생활 지원센터 센터장이기도 하다. 풀뿌리 지역운동을 위해 안심지역에 들어와 여러 마을 일을 맡아왔다.
△김연희: ‘반야월 행복한 어린이 도서관 아띠’ 전 관장. 그가 2대 관장을 맡으면서부터 도서관이 원주민들 주도로 운영돼오고 있다. 지금은 한사랑 장애인 지역생활 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