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위기 맞자, 주민들이 모금·인테리어 직접 참여
[새해 기획] 사람과 사람 잇는 대구 안심마을 ④
지속가능한 공동체 꿈꾼다
발달장애인 원호는 1월1일자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다시 일자리를 얻었다. 지난해 초에 채용하기로 했던 어느 업체가 직원들의 반발을 이유로 약속을 깨는 바람에 1년을 속절없이 쉬어야 했다. 원호 못지않게 마음고생이 컸던 조윤식에게도 원호의 재취업은 귀한 새해 선물이었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안심마을 안에서 만들어내고, 밖에서 찾고, 통합해 관리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사람 이야기’의 사무국장이다. 기업들의 몹쓸 행태를 자주 봤지만,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단속한다. 그렇게 일자리 하나라도 더 찾으려는 의지를 벼린다.
원호의 새 일터는 생산자조합인 ‘농부마실 사회적협동조합’ 매장이다. 농부마실이 새로운 일을 벌이면서 손이 더 필요해졌다. 발달장애인 한 사람이 하루 4시간 일하면 맞춤했다. 생각지 못한 벽이 나타났다. ‘장애인 근로지원인’과 일대일로 매칭해야 하는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주는 근로지원인 인건비는 하루 8시간 일해야 월 최저임금 수준에 이른다. 이번에도 안심마을 사람들의 작풍이 어김없이 발휘됐다. 농부마실은 발달장애인 2명을 고용해 8시간을 맞췄다. 어떻게든 한 사람 임금만큼 더 수익을 내야 하는 숙제를 뒤로한 채.
“괜찮은 마을 유지에 품이 참 많이 들어”
안심협동조합 이사장 박인규는 서툰 솜씨로 강연 동영상을 만들어 납품하느라 지난 연말을 여느 해보다 바쁘게 보냈다. “그거 해서 한 사람 월급 줄 돈을 만들었다. 새해 첫달 월급 나올 일거리도 찾아봐야 한다.” 그는 “괜찮은 마을 하나 유지하는 데 보이지 않는 품이 참 많이 든다”고 했다. 안심마을은 사회적 경제, 발달장애, 마을공동체에 뜻을 품은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사랑 어린이집 원장 윤문주는 “다들 브리핑을 듣고 ‘와’ 했다가 탐방을 마칠 때쯤 ‘이걸 다 어떻게’로 바뀐다”며 웃었다. 감탄과 감당의 간극은 아득히 멀다.
장영훈은 안심협동조합 사무국장을 맡은 지 새해로 만 10년이 됐다. “일은 즐거웠지만, 늘 경영위기였다.” 조합의 존폐가 오갈 때도 있었다. 2013년 9월 안심협동조합은 대한민국 마을기업 박람회에서 전국 최우수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상금 3천만원이 화근이었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종잣돈으로 보였다. 꼼꼼한 시장조사도 없이 두번째 매장을 덜컥 열었다. 감당하기 벅찬 경영위기가 닥쳤고, 1년 만에 폐업했다. 1매장에도 심각한 여파가 미쳤다. 2015년 말엔 건물주가 바뀌고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매장을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곁눈질하던 사람들이 금세 모여들었다.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백척간두에서 조합의 존재 이유부터 되물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먹거리를 나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비장한 각오가 곳간을 채워줄 리는 없었다. 남은 돈을 바닥까지 긁어도 옮길 곳을 찾기 어려웠다. 다들 싼 데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출자금도 추가로 모았다. 매장 비품부터 전기 설비, 인테리어까지 조합원들이 일을 도맡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조합원이 5미터 위에 올라서 페인트를 칠했다. 2016년 8월, 지금 매장이 문을 열었다. 공사 시작 두달 만이었다.
위기 닥치면 제힘으로 넘는 사람들
안심마을 사람들은 벽이 나타나면 멈추거나 에돌지 않고 제힘으로 넘어서려 한다. 그러나 벽 너머도 자주 벽이었다. 넘어서면 또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20여년을 허들 경기 하듯 지나왔다.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했을 터이다. 자신들만의 꿈이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구체적인 필요가 있었다. 벽을 넘어서면 또 한걸음 내디딜 수 있을 만큼의 성과와 내처 멀리 갈 수 있을 듯한 성취감이 한움큼 쥐어졌다. 허들 경기는 충분치 못한 비유다. 담장을 타고 넘어 사방으로 뻗어가는 덩굴식물이었다. 담장 밑으로도 뿌리줄기 열매가 마디마디 영글었다.
그러나 안심마을은 전례 없는 외부 환경과 지금 마주하고 있다. 장영훈은 물가 인상 탓에 조합원들의 가처분소득이 확연히 줄어든 걸 느낀다. 밥상 물가는 평균을 훨씬 웃돈다. 김장철 배추와 고춧가루가 돌아가며 비싸던 패턴이 지난해엔 전 품목 폭등으로 변했다. 작황이 너무 나빠 농민들한테도 그림의 떡이었다. 쥐어짜듯 조합 이익률을 낮췄다. 흉작의 원인을 생각하면 아직 예고편이다. “기후위기만한 경영위기도 없다.” 제 코가 석자일지라도, 장영훈은 마을신문 ‘안심ᄆᆞᆯ’에 “우리 같은 작은 직매장들이 재앙을 늦추는 데 기여하자”고 썼다.
‘공터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김정화는 해가 바뀌었어도 요지부동의 숫자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다. 2020년 행정안전부 지역자산화사업으로 대출받은 5억원의 원금 분할상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행안부가 농협, 신용보증기금과 맺은 약정기간 3년이 지난데다, 그사이 대출 금리는 3%에서 6.5%로 치솟았다. 조합원 출자금 2억여원을 합쳐 2021년 완공한 ‘공터 2호’는 월세가 대출 이자에도 훨씬 못 미치게 됐다. “더 나은 조건으로 대출을 갈아타려 했지만, 접촉한 모든 은행이 손사래를 쳤다.” 사정 빤히 알면서 월세를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 정상 외교 빼고 거의 모든 분야를 삭감했다. 사회적 경제 분야도 직격탄을 맞았다. 안심마을 단체들은 정부 지원의 직접 의존도가 낮지만, 기후위기가 그렇듯, 거대한 변화의 여파를 비켜 갈 수는 없을 터이다. 대구협동조합지원센터장 유길의(안심협동조합 초대 이사장)는 “안심마을에 협동조합이 이렇게 많다는 건 그동안 사회적 경제와 관련한 혜택이 이리저리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협동조합과의 예산은 10분의 1로 줄었다. 그 예산에 기대 대구시가 운영을 위탁한 협동조합지원센터도 지난해 말로 활동을 마쳤다. 유길의를 비롯한 센터 사람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제1 과제는 항상 ‘지속가능한 살림’
돌이켜보면, 안심마을 단체들의 제1과제는 언제나 ‘지속가능성’이었다. 아무리 꿈을 중시한다 해도, 살림이 지속되지 못하면 백일몽이다. 현실은 엄연하다. “ 협동조합의 적자는 소비자가 덜 내고 더 많이 받아갔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흑자를 내지 못하면 그만큼 여러 고통이 뒤따른다.” 유길의는 거래처 대금, 급여, 부채, 추가 출자 같은 문제를 하나하나 꼽았다. 물론 흑자는 절대 녹록지 않다. 농협이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지원을 받는 매장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럼에도 유길의는 “애초 설계대로 조합원 수를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짚었다.
지속가능성은 손익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띠 도서관 관장 김수민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없앤 작은도서관 활성화 예산이 크게 아쉽지 않다. 코로나19 위기 때도 소모임을 꾸준히 유지해 도서관 이용률과 후원자가 줄어드는 것을 최소화했다. 새로 후원자가 될 만한 싹수를 알아보는 자신만의 ‘매의 눈’도 믿는다. 하지만 도서관이 있는 구도심의 어린이 수가 줄어드는 건 다른 문제다. 김수민은 “신도심으로 옮기는 것도 논의했지만, 상징성을 생각해 이곳에 남기로 했다”며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도 아띠를 이용하도록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마을도 나이를 먹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안심마을 ‘1세대’는 어느덧 50대 이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최대 다수를 차지하는 ‘현역’이다. 40대 초반인 장영훈은 마을 안에 또래가 네댓밖에 되지 않는다. 심각한 가분수다. 마을의 여러 단체와 사업장에서 20~30대가 일하고 있지만, 피라미드 형태의 세대 구조에 이르기엔 한참 모자란다. 1세대인 박인규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성장하는 게 마을의 지속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데, 가장 어려운 문제 역시 그것”이라 했다. 1.5세대 어름인 김수민도 “다음 세대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세대는 차이를 발생시킨다. 다만 안심마을에서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김민규(카페 ‘사람 이야기’ 혁신점 매니저)는 3년 전 안심마을에 왔다. 1세대가 놀랍고 존경스럽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제 인생이 없어질 것 같아서다. 자기 세대는 재미를 찾아 떠도는 세대다. 여행이 그렇고, 인스타그램이 그렇다. 끝없이 ‘비교’하며 ‘유희 경쟁’을 펼치는데, 다들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친구들은 ‘거기 왜 있느냐’고 하는데, 이렇게 돌려주고 싶다. ‘너나 나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찾아가는데 수단만 다를 뿐’이라고. 여행지나 인스타그램이 아니라 ‘먹고 자는 동네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청년 무담보 대출…세대 잇는 힘 길러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만남으로 생성된 힘이 세대의 강 앞에서 주춤하는 원인 가운데는 ‘경제적 불안정’이 있다. 안심마을은 ‘반야월 대동계’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등 나름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을 해왔다. ‘마을과 자치 협동조합’ 이사장 강은자는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해 정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계가 크다”고 했다. 안심마을은 청년들에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새해 서른살이 된 김민규는 “여기가 내게 꼭 맞는 곳 같다”면서도 “(실존적인 전망이) 불확실하다. 마을 안에서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우리 세대의 미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주민 출신 활동가 1세대인 김연희(2대 아띠 도서관장)에 따르면, 안심마을 단체들에는 자녀가 셋인 사람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출생률이 속절없이 추락하는 시대 흐름과 대비된다. ‘마을 효과’라고 추론할 과학적 근거보다는, 그 자녀들이 성장한다면 세대의 연결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박인규는 신중했다. “일러야 갓 20대다. 그 친구들은 부모 품을 떠나 제 삶을 찾아가는 나이다. 언제쯤 얼마나 돌아올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체험한 마을은 귀소를 이끌 몸속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찬찬농원 대표 박찬영은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이 지역 토박이고, 마을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부모를 봐왔지만, 안심마을이 태동할 즈음 이미 청년이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뒤 스페인어권 나라들에서 오래 일하다 2020년 돌아와 무화과 농사를 시작했다. 안심협동조합과 농부마실 협동조합은 초기 판로 개척에 결정적인 힘이 돼주었다. “마을에 도움을 준 적도 없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에게 안심마을은 장애·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사는 것 말고도, 생산자 처지까지 헤아리는 소비자들이 있는 곳이다. 박찬영은 농사일 틈틈이 마을에서 스페인어 강좌를 진행한다. 1세대들은 그가 ‘먼저 도래한 미래’이길 기대한다.
“우리가 해온 방식은 완성된 모델도 아닐뿐더러 지역 안에서 확산, 파급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컸다. 다른 지역에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모델인지도 모르겠다.” 윤문주는 “다만 자기만족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를 넘어서야 한다는 고민에서 멀리 내다보고 걸어왔다”며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을을 이루고 10년, 20년 섞여 살아야만 뭐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있기에, 멀게는 서울에서부터 발달장애인 가족과 당사자가 이주해 정착하는 사례가 하나둘 이어지고 있을 터이다.
사회복지법인 한사랑과 ‘사람 이야기’, ‘와글’ 같은 단체가 모여 있는 빌딩의 1층에는 인쇄 가게가 있다. 2~4층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 몇은 이곳을 무시로 드나든다. 누구는 신문을 들고 갔다 이튿날 가져와 가지런히 정리하고, 누구는 건물 우편물을 죄 가져다 놓는다. 사장 장옥남(70)은 “처음엔 깜짝깜짝 놀랐는데, 자꾸 보니까 익숙해졌다. 지금은 다독이며 ‘놀다 가라’ 한다”며 웃었다. ‘공터 1호’가 이 지역에 터를 잡으려 했을 때 일부 주민들이 혐오 표현 담긴 펼침막을 걸고 방해한 데서 이만큼 왔다. 멀리 왔다. 또 멀리 가야 한다.
또 다른 ‘장애인과 공존공간’ 상상도
안심마을 사람들은 웬만해선 엄두를 내지 못할 시도를 해왔지만, 서른살 김민규의 짐작과 달리, 애오라지 “인생을 갈아 넣은 삶”은 아니었다. 열심히 재미를 추구했다. 비교를 위한 유희 경쟁이 아니었을 뿐. 역설적으로 유길의는 그 재미에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을 너무 좋아했던 게 아닐까. 마을 일 벌이는 재미로 너무 바빴고, 어느덧 마을에 갇힌 경향이 없지 않나.” 지금 모델을 더 다듬고, 안심마을처럼 도시 지역 기반을 가진 협동조합들과 열심히 관계 맺고 연대한다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안심마을은 당장 눈앞의 벽부터 타고 넘어야 한다. 김정화는 무표정한 숫자를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미래의 ‘공터 3호’를 구상한다. 마을 사람들 얼굴이 푸릇한 덩굴식물 이파리처럼 하나둘 떠오른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