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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부장 호무라☆마기카

삼양라면 침구· 꽃게랑 가운... 이 조합이 ‘펀슈머’ 잡았다

by 카나메 마도카 2021. 11. 4.

오래된 유명 브랜드를 전혀 다른 상품과 결합하는‘이종 컬래버레이션’이 유통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삼양라면이 라면 봉지 디자인 그대로 만들어 출시한 침구류 (왼쪽)와 빙그레 스낵‘꽃게랑’이미지를 패션 상품에 녹인‘꼬뜨게랑’가운을 가수 지코가 걸친 모습.

#1. 온라인 패션몰 무신사가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스카프 300장과 넥타이 300장을 추첨제로 판매했는데 무려 1만300명이 몰렸다. 이탈리아산 실크 원단에 꽃게 무늬를 수놓고 태그(tag)엔 ‘Côtes Guerang’이란 브랜드를 새겼다. ‘꼬뜨게랑’이라는 프랑스 브랜드 같지만 실은 빙그레의 최장수 스낵 ‘꽃게랑’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빙그레는 작년 7월 ‘디자인온’이란 패션 업체와 협업해 이 브랜드를 선보였다. 가수 지코가 ‘꼬드게랑 가운'을 걸친 채 꽃게랑을 먹는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도 올렸다. 이 영상은 반년여 만에 조회 수 256만을 넘겼다. 회사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11만명)의 23배다. 빙그레 관계자는 “홍보용으로 만든 꼬뜨게랑 브랜드 인기가 과자 매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했다.

소비자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콜라보가 마케팅 유행이다. 모나미 유성매직 이미지를 차용한 편의점 음료수.

#2. 지난 주말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국내 문구 브랜드 모나미의 유성매직과 색상·모양이 똑 닮은 500mL짜리 탄산음료 사진이 잇달아 올라왔다. 페트병 라벨에는 ‘모나미 매직’이라는 큼지막한 글자 아래 ‘블랙레몬스파클링’ ‘레드메론스파클링’ 같은 진짜 상품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편의점 GS25가 모나미와 손잡고 출시한 컬래버레이션(협업) 상품이다. SNS에 잇따라 사진이 뜨면서 제품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갔다.

유통업계에 이종(異種) 브랜드 간 컬래버 열풍이 뜨겁다. 과거에도 ‘대중 스타+패션 브랜드’ ‘패션 브랜드+패션 브랜드’ 같은 컬래버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문구+음료’ ‘금융+라면’ ‘식당+패션’ ‘시멘트+가방’ 등 이색 컬래버 상품이 쏟아진다. 재미를 소비하는 ‘펀슈머(Fun+Consumer)’를 겨냥한 이색 컬래버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매출도 늘리는 것이다.

◇올드 브랜드, 이미지 혁신 효과

이종 컬래버 상품은 최근 그야말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보험 상품 이름이 들어간 즉석 우동, 라면 봉지와 똑같이 생긴 이불, 라면 로고 캐릭터 ‘너구리’가 그려진 옷 등 수백 종 상품이 출시됐다. 지난 15~18일엔 서울 신당동 돼지고기 맛집 ‘금돼지식당’이 가게 로고인 ‘돼지코’가 그려진 이불과 베개 등 침구류를 네이버쇼핑에 올려 준비한 수량을 모두 팔았다.

소비자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콜라보가 마케팅 유행이다. 구두약 브랜드 말표와 밀가루 브랜드 곰표를 차용한 맥주 제품.

이종 컬래버에서 브랜드를 빌려주는 쪽은 주로 ‘오래된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이다. 국내 이종 컬래버의 원조로 꼽히는 회사는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이다. 2018년 여름, 패션 회사 4XR과 손잡고 ‘곰표 티셔츠’를 만들어 완판한 뒤 유통 업체들 러브콜이 쏟아졌다. 작년엔 편의점 CU와 손잡은 ‘곰표맥주’가 히트를 쳤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20~30대를 상대로 한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게 계기였다”고 했다. 곰표의 성공 이후 모나미 볼펜, 말표 구두약, 천마표 시멘트, 삼양라면, 농심 새우깡 등 장수 브랜드들이 잇달아 자사 브랜드를 이종 상품에 빌려주고 있다.

◇유통·제조사는 즉각적 매출 증대 노려

브랜드를 빌려 오는 유통·제조업체 쪽은 홍보 효과를 통한 단기간 매출 증대를 노린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제조 업체 입장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띄우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이미 익숙한 브랜드를 갖다붙여 소비자에게 들이밀면 단번에, 쉽게 각인된다”며 “특히 곰·말 등을 앞세운 옛날 브랜드는 불황에 지친 소비자들 마음을 파고든다”고 했다.

성공의 관건은 신세대 소비자의 ‘재미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재미 요소'를 갖춘 이종 컬래버 상품은 회사가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찾아서 제품을 사고, 산 제품을 알아서 홍보해준다”고 말했다.

CU가 작년 말 출시한 ‘말표 흑맥주’는 지난달 카스·테라·하이네켄에 이어 매출 4위를 기록했다. 곰표 밀맥주는 작년 6월 출시 당시 사흘 만에 준비한 10만개가 모두 팔렸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적 판매량 150만개를 기록 중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곰표’라는 키워드로 올라온 게시물은 2만건이 넘는데, 절대다수가 ‘곰표 밀가루’가 아닌 CU 제품들이다. 경쟁사인 GS25는 지난 18일 모나미 유성매직 탄산음료를 출시하면서, 향후 여러 국산 장수 브랜드를 대규모로 자사 상품에 차용하겠다는 내용의 ‘K브랜드 육성 사업’을 함께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