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지역 독립언론 ‘뉴스민’ 후원의밤 행사에서 만난 기자들과 후원회원들… 그들은 왜 뉴스민을 지키려 ‘뉴민스’가 되었을까
지역언론이 위기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고 지역언론도 생사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한다. 지역언론은 상시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자생력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선 지역언론이 있다. 수도권 집중을 비판하면서 지역 기득권을 대변하는 지역언론을 벗어나 인권과 사회진보를 지향하며 지역 시민의 입장에서 취재하고 보도하는 독립언론으로서의 지역언론도 있다.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자랑’을 통해 지역에서 건강한 언론의 역할을 해나가는 지역언론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기자 6명을 살리려 1000명이 모였다. 지난달 31일 저녁 대구시 중구 동성로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대구경북 지역언론 <뉴스민>의 ‘후원의 밤’ 행사는 반가운 인사와 웃음들로 시끌벅적했다. 뉴스민을 응원하러 들른 시민들은 어느새 소매를 걷어붙이고 기자들과 함께 손님들을 맞이했다. 음식 서빙을 도우러 온 열댓명의 20대 초반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뉴스민을 후원하는 청년들 혹은 후원자의 친구들이다. 새로 후원회원 신청을 하는 자리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후원회원들을 부르는 애칭 ‘뉴민스’에 걸맞게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토끼 로고를 오마주한 뉴민스 티셔츠 굿즈도 준비했다.
후원호프는 지난 1월 ‘경제적 이유로 해산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천용길 대표의 말을 들은 후 이상원 편집장이 ‘뉴스민을 도와달라’는 칼럼을 쓴 직후 주변에서 먼저 제시한 아이디어다. 뉴스민 구성원들이 한 달반 간 틈틈이 준비했다. “언론사가 후원호프를 한다는 게 좋은 모습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망설였지만 당장 기자들 월급을 줄 다른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후원호프에서, 기자들은 뉴스민을 응원하는 100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자정까지 이어진 후원의밤 행사에서 기자들이 준비한 후원 티켓은 모두 팔렸고, 후원회원은 약 400명에서 800명으로 두 배가 늘었다.
서울에서 기자 일을 하다 지난해 입사해 뉴스민에서의 경력은 1년 남짓인 김보현 기자는 티켓을 파는 일이 가장 걱정이었다. “선배들은 티켓을 팔면서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입사 1년밖에 안돼서 그러기가 어려웠다. 대신 ‘앞으로 어떤 취재를 더 열심히 하겠다, 이런걸 기획해보고싶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행사 현장. “대체 뉴스민이 지역에서 어떻게 취재해왔길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응원해주실까?” 김보현 기자는 이 풍경이 생경했다.
“뉴스민은 대체 어떤 기사를 써왔길래” 1000명의 사람들이 모였을까
행사가 시작하기 직전인 오후 4시30분 경, 분홍색 조끼를 입은 6명의 중년 여성들이 가장 먼저 후원호프를 찾았다. 오늘 전국 총파업을 마치고 온 대구지역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었다. 볕이 잘드는 2층 창가 자리에 자리 잡은 조합원 A씨는 “뉴스민이 학교 비정규직 급식 노동자들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취재해줬다. 우리같은 비정규직들, 소외된 사람들, 학교 안의 작은 목소리들을 크게 내주는 뉴스민이 큰 언론사로 커갔으면 좋겠다. 뉴스민처럼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알려줄 수 있는 언론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는 지난해 학교 급식실 대체인력으로 투입돼 3일 동안 급식 조리원으로 일해보며 급식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 문제를 취재했다. 기자회견을 가거나 인터뷰를 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 선택이었다. A씨는 “급식실 일이 마치는 시간이 되면 김 기자에게 계속 괜찮냐고 전화했다. 우리가 전달해주는 보도자료 내용이 아니고 본인이 경험한 걸 자세히 써서 교육청에서 기사를 보고 바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우리한테는 전국에서 학교 급식노동자 실태에 대해 가장 자세히, 이해하기 쉽게 우리의 상황을 알려준 분이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대구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를 조직한 활동가들도 일찍 후원호프를 찾았다. 뉴스민은 대구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를 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거의 유일한 언론사였다. 활동가 B씨는 “큰 언론에서는 관심 가져주지 않았는데, 뉴스민에서 계속 취재를 와줬다. 보통 시민들이 언론의 시선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은데, 뉴스민은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되어주기도 하고, 우리가 잘 비춰지지 않는 자리까지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줬다”며 “이런 언론은 우리가 지켜줘야되겠다는 생각에 10년전부터 후원을 하고 있다. 우리 시민들이 뉴스민의 든든한 백이 되고싶다”고 했다.
후원의밤 행사가 무르익던 오후 8시쯤 박중엽 뉴스민 기자가 9년 동안 해고·복직 투쟁 취재해 온 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도 후원호프에 도착했다. 기자들과 반갑게 인사한 노동자 C씨는 “우리는 비정규직이었고, 처음 노동조합을 시작할 때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알리기가 어려웠다. 근데 뉴스민이 초창기부터 찾아와서 우리들 이야기를 계속 실어줬다. 9년째 싸우고 있는데 빠짐없이 계속 취재를 왔다. 그런데 이번에 이분들이 계속 어렵게 생활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남은 ‘지역 독립언론’
후원의밤에는 유독 뉴스민을 찾은 타사 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참 못된 질문이네” 홍준표 말 뒤 광고 끊긴 ‘뉴스민’>이란 제목의 한겨레21 기사 등을 통해 언론계에서 뉴스민의 사정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 지역의 기자부터 타 언론사의 대구경북 주재기자들까지, 뉴스민을 응원하는 이유는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뉴스민이 필요해서’였다.
후원호프를 찾은 한 대구경북 지역언론 기자는 “대구 지역언론들은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려고 사활을 걸고 노력한다. 그런데 사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다뤄야 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지자체가 권위적이고 불투명한 부분이나, 거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데, 우리 언론사에는 취재할 때 성역이 있다. 그걸 뉴스민은 다룰 수 있어서 부럽다. 뉴스민이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뉴스민 후원회원의 10%는 기자들이다. ‘뉴스민이 어려운데 뭐라도 해봐야되지 않겠냐’며 후원의밤을 제일 먼저 추진한 사람들도 뉴스민 기자들이 아닌 타사 기자들이었다. “지역의 다른 매체 평기자들 중에는 본인 매체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부적으로도 이야기를 해보지만 사실 내부에서 깨는 게 가장 힘들다. 그들의 조직은 우리보다 훨씬 크니까 운영을 위해서 적정 수준에서 타협해야 하는 게 있다는걸 이해는 하지만, 과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특정 사안을 지역 매체 기자들이 못쓰면 우리한테 연락해서 먼저 써달라고 한다. 그럼 우리도 따라갈 수 있다고.” 이상원 편집장의 말이다.
서울과는 달리 지역에는 지방행정기관에 권력이 몰려있다. 노동, 환경 등의 사안도 모두 행정 권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역언론사의 주요 수입은 대부분 행정기관에서 나와 행정 감시가 더 어려운 환경이다. 그 중에서도 대구 12명, 경북 13명의 국회의원은 모두 한 정당 소속이다. 지방의회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지역 사업이 제대로 된 토론이나 경쟁 없이 이뤄질 때가 있어 언론과 시민의 견제가 더 중요하다.
이미 수많은 지역언론이 ‘독립’언론의 길을 걷고 있지만, 조금 더 이견을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뉴스민은 지역언론이면서도 유독 ‘독립’언론의 정체성이 부각됐다. 뉴스민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10년을 버틴 원동력이자 지역 시민들이 뉴스민을 더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대부분 중요한 정책 의제는 중앙에서 결정하고 지역에서 집행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지역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은데 그냥 놔두고만 보면 제대로 결정하지 않는다. 뉴스민이 정치적으로 진보를 지향해서, 특별히 대구경북 지역 행정권력이 보수 정치지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보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고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행정 권력을 감시할 뿐이다.” 이상원 편집장의 말이다.
“현 대구시장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인데, 시장이 특별법을 만들어서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 이후 지역언론을 보면 매달 이런 보도가 나온다. ‘10월 신공항 특별법 통과’, ‘11월 신공항 특별법 통과’, ‘12월에는 통과’ 이런 식이다. ‘이번 달에는 통과 될거다’라고 시장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른 보도다. 사실 언론의 역할은 그게 아니라, 시장의 말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따져보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충하라고 말하는 게 진짜 그 법이 실현되게 하는 방법일텐데 그걸 안 하고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이 계속 된다고만 하는거다. 그런 면에서 지역언론이 권력 기관에 편향되어있는 측면이 있다.” (이상원 편집장)
기자들이 꼽은 뉴스민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도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들이 알고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다. 현 대구시장이 들어오면서 홍보하고 있는 여러가지 대구 ‘최초’ 정책은 김보현 기자가 주목해 감시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작년에 새 시장이 들어오고 전국적으로 ‘최초’로 하는 게 많다. 대기업 유치, 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 대구가 최초로 한다면서 홍보를 하고 ‘최초’에 방점에 찍혀서 좋은 의미의 언론 보도가 많이 되고 있는데, 나에게는 대구 사람들이 실험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부작용이 있을텐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서 ‘이로 인한 영향은 누가 어떻게 받을까’를 주목해서 취재해보고 있다.” (김보현 기자)
‘지속가능한 언론사’를 꿈꾸는 뉴스민의 미래
천용길 대표가 바라는 뉴스민의 미래는 ‘지속가능한 언론사’다. 뉴스민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권력이나 돈에 휘둘리지 않고 기자 생활하기를 꿈꾸는 20~30대 청년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놓는 것이 천 대표의 목표다. 뉴스민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낙심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천 대표는 “애초 뉴스민의 목표가 지속가능한 플랫폼이 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뉴스민이 사라져버리면 그게 끊어지는거니까 앞으로도 이런 지역 독립언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뉴스민이 되기 위해 뉴스민은 더 작은 지역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더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만큼 대구와 경북의 격차도 크다. 대구 사람들은 경북의 작은 시나 군을 촌동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구 사람들이 갖고있는 기득권이 굉장히 크고, 언론도 마찬가지다. 좀 더 작은 지역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 상황에서 힘의 차이가 나온다.” 천 대표의 말이다. 2014년 경북 청도 송전탑 공사, 2015년 영덕 원자력 발전소 추가 신규 부지 건설 문제, 2016년 성주 사드배치 문제 등 지역 곳곳에서 벌어진 현안을 쫓은 뉴스민의 취재에는 작은 지역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문제들에 집중해야겠다는 기자들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경북 23개 시군 출신의 기자들을 한 명씩 채용하는 것은 천 대표의 꿈이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뉴스민’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직접 지역 행정도 감시하고 지역 역사도 기록하게 하고싶다. 분명 문제가 눈에 보이는데, 인력이 없어서 기초의회 시군 단위의 지방행정을 다 못들여보는 게 제일 아쉽다.” (천용길 대표)
이상원 편집장은 ‘동네마다 동네신문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처음 뉴스민을 만들 때부터 동네신문을 만들어서 같이 교육도 하고 기사도 쓰면 좋지 않을까 이야기했었다. 주변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 애정이 생기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본인 지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 두명만 있어도 동네가 변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뉴스민이 지원을 하고 동네언론을 만들어 같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원 편집장)
뉴스민은 지난해 대구 마을공동체 방송국 6곳과 함께 교육을 진행했다. 올해는 각 동네 주민들이 뉴스민과 함께 기사도 쓰고 영상도 만들 수 있는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마을 방송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제작해주고 이를 통해 뉴스민과 기사를 공유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뉴스민이 재정적 여력이 생기면, 뉴스민에서 직접 이분들에게 취재비와 원고료를 줄 수 있으면 제일 좋을 것 같다. 동네마다 한 두명씩은 전업으로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게끔 사람들을 양성해주는 역할을 시도해보려 한다. 결국 언론을 하는 이유는 좀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보자는건데, 사람들이 뉴스민을 활용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천용길 대표)
대구경북 지역의 역사를 기록해두겠다는 목표도 있다. 천 대표는 현재의 ‘파워풀 대구’ 슬로건 이전에 있었던 ‘컬러풀 대구’를 복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구는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아주 역동적인 도시고, 새로운 운동이나 의제가 활발한 도시다. 해방 이후 일어났었던 대구 10월항쟁이나, 70년대 경북 농민운동들, 90년대 들어서게 되면서 활발해진 환경운동과 성소수자 운동도 그렇고, 대구라고 하는 지역이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대구는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대구경북 사람들의 기억이 사회화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천용길 대표)
재정 위기에도 뉴스민이 새로운 기자를 뽑는 이유
존폐 위기에 놓일 정도로 어려웠지만 2021년부터 3명의 새로운 기자와 PD를 채용한 것도 ‘지속가능한 뉴스민’을 만들기 위해서다. 2012년 창간 후 계속 천용길, 이상원, 박중엽, 김규현 기자가 도맡아 운영해왔던 뉴스민은 2021년 처음으로 신입 공채를 진행해 장은미 기자를 뽑았다. 동시에 처음으로 김규현 기자가 타 매체 경력기자로 이직했다. 여종찬 PD는 2021년 대구시 보조사업으로 뉴스민에 합류했다가 사업 기간이 끝난 후 정식 입사했고, 지난해에는 김보현 기자가 경력기자로 합류해 현재는 6명의 인원이 뉴스민에서 일하고 있다.
“이상원 편집장과 나는 2007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고, 박중엽, 김규현 기자도 2010년부터 알고 지냈다. 뉴스민이 고인물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하면서 뉴스민이 언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선망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목표였다.” (천용길 대표)
뉴스민의 ‘후원의 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기자들은 후원회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시민들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마디를 만들었다. 시민들은 위기에 처한 뉴스민을 살리기 위해 모였고, 기자들은 대구경북 ‘지역언론’으로서 뉴스민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스스로 되새겼다. “재정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지역에서 독립이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구나’라고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이번 행사를 하면서 그 의문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대구 시민들이 뉴스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고, ‘어쩌면 가능하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김보현 기자의 말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s://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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