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일 대구시장은 업체 민원을 현장에서 해결해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지역 공단을 찾고 있다. 김 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최근 성서산업단지 내 자동화설비 제조업체인 삼익THK㈜를 방문해 회사 직원으로부터 제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대구시
“2011년은 대구를 세계지도에 올려놓는 해”
“10년간 국책사업 소외… 공정하게 지원을
내륙도시 약점은 대운하 건설되면 돌파구
경제자유구역 지정돼 外企유치에 날개
市면적 12% 차지하는 軍시설 이전 숙원”
《대구시장 집무실엔 지난해 10월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대구 방문 때 김범일 시장과 찍은 사진이 있다. 버핏 회장이 김 시장에게 지갑을 건네고 있는 사진이다.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이었단다.
대구는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0여 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다. 김 시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것 외에 대구가 살 길은 없다.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
대담=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대통령선거 이후 대구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던데….
“정치인 출신 대통령은 정치 논리에 따라 지방정책을 펴 왔지만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논리대로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대구가 과거 10년간 받아 온 차별을 더는 안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대구에 국책 프로젝트 하나 없었지 않나. 위천공단이 물 문제 때문에 무산되면서 산업 용지 한 평도 공급받지 못했다. 16개 시도 중 우리만 국가산업단지가 없다. 다행히 지난 대선에서 국가과학산업단지 1000만 m²(약 330만 평) 조성 계획이 대통령 공약에 반영됐다. 지능형 자동차부품, 로봇 등 첨단산업과 기계·금속·항공 부품산업 등을 육성할 기회다. 특혜를 기대하지 않는다.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거다.”
―대구경북 출신이 대통령 돼서 말고, 한반도 대운하가 정말 대구에 도움이 되나.
“대구의 가장 큰 한계가 내륙도시라는 점이다. 물길과 하늘길이 부족하다. 운하가 건설되면 대구가 항구도시로 바뀐다. 부산에서 경북 구미, 상주까지 낙동강 운하는 경제성이 확실하다. 치수와 국토관리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낙동강에 가보시라. 환경을 위해서도 운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럼 대구의 경쟁력은 뭔가.
“우선 인적 자원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 교육도시가 대구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교육도시라니….
“대구와 인근에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만 50여 개교다. 수성구의 교육 여건은 서울 강남에 못지않다. 여기에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으로 대구시민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작년 3월 세계육상대회를 유치하고 케냐 몸바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아일보를 봤더니 1면 톱기사 제목이 ‘대구가 자랑스럽다’더라. 눈물이 핑 돌았다. 대구시민의 기가 살아나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힘이다.”
―또 다른 경쟁력은….
“둘째로 내륙 교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돼 있다. 7개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이고 KTX가 서울∼대구를 1시간 40분 거리로 당겨 놓았다. 셋째, 대기업은 없지만 기계 금속 정보기술(IT) 센서 섬유산업이 골고루 발전해 있다.”
―섬유산업은 내리막길이라는데….
“고급화와 신소재 쪽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는 단계다. 해마다 두 자릿수의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밀라노프로젝트 등으로 애쓴 결과 작년에는 수출이 11% 늘었다. 반도체 항공 등 첨단산업 대부분이 섬유와 관련 있다. 섬유산업을 국가의 기간안보산업으로 생각하고 정부도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대구의 비전이 글로벌 지식경제 자유도시인가.
“그렇다. IT 분야의 우수 인력이 경북대에서만 매년 1000명씩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 교육 문화 분야에 IT와 서비스산업을 접목시켜 육성할 것이다. 작년 말 대구경북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받았다. 외국 기업은 규제와 세제 면에서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작년 10월 우리나라를 첫 방문한 버핏 회장이 대구만 왔다간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가 투자한 회사(이스카)의 공장 대구텍이 자신의 해외 공장 중 최고라고 해서 방문했다. 세계적 병원과 학교, 첨단기업 육성이 어렵긴 하지만 이 길밖에 없다. 외국인투자가들이 대구에 와서 아이들 교육하며 살도록 외국인학교도 유치했다. 2010년 문을 연다. 남은 과제는 우수 외국 대학을 유치하는 일이다.”
―글로벌 지식경제도시로 서울과 경쟁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외국인들은 딱 살기 좋은 도시 규모로 대구를 꼽는다. 수도권 규제를 폐지할지 말지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를 보자. 수도권 집중도가 60%를 넘는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 이래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인건비 땅값 교통비 등을 보라. 이게 과연 20∼30년 뒤 후손들에게 물려줄 나라인가. 지금 행정 언론 기업 학계 등 엘리트 계층이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아 수도권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져 간다. 고급 공무원단 진입 요건에 일정 기간의 지방 근무를 넣도록 간절히 제안한다. 중앙 엘리트는 지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이 대목에서 김 시장은 손을 치켜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는 국장급 2명을 중앙과 교환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무원 철밥통 깨기에 나섰는데….
“우리는 재작년 인사 때 벌써 깼다. 국장들이 원하는 사람을 골라 쓰도록 하고 아무도 안 쓰려는 사람 10여 명을 대기발령 냈다. 상당수는 조기 퇴직시켰다. 그러나 발탁 인사만 부각시켰을 뿐 이를 나팔 불 듯 알리진 않았다. 따끔한 메시지는 전달하되 조직 사기를 위해서였다. 외부에서 박수 받자고 직원들의 자존심을 짓밟아선 안 된다.”
김 시장의 집무실에는 ‘待人春風’(대인춘풍·사람 대하기를 봄바람처럼 하라는 뜻)이라는 서예 액자가 걸려 있다.
―2011년 세계육상대회가 대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며칠 전 AFN채널 퀴즈 프로그램을 봤는데, ‘대구와 부산이 있는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에 출연자 모두 답을 못하더라. 미국 사람들은 서울만 안다. 2011년은 세계지도에 대구를 올려놓는 해가 될 것이다.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엄청난 도시 브랜드 상승효과가 있다. 국가적으로는 모든 스포츠의 기초인 육상 및 학교체육을 중흥하고 엘리트 육상의 기반을 닦을 기회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한다면 건의할 것은….
“첫째는 영남권 공동 과제로 국제신공항 건설이다. 인구 1350만 명이 사는 5개 광역시도에 허브 공항이 없다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부산 울산 대구의 중간지점에 제2의 허브 공항을 만들어 하늘 길을 열자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발전 힘들다. 둘째는 공군부대인 K2 이전이다. 대구 시가지 면적의 12%가 군사시설이다. K2는 소음이 심각해 50만 명이 피해를 본다. 이중창문을 하고도 학교 수업을 못 들을 정도다. 서울 부산 의정부의 군사시설은 다 옮기는데 대구만 안 옮긴다. 가만있으니 가마떼기인 줄 아는가.”
정리·대구=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김범일 시장은
△경북 예천 출생(58세) △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원 행정학 석사 △행정고시(12회) △총무처 교육훈련과장(1980∼1982년) △대통령 행정비서관(1996∼1997년)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1998∼2002년) △대구시 정무부시장(2003∼2006년) △대구시장(2006년∼)
▼“광역단체 최초로 기업현장 민원해결팀 운영”▼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줘야죠.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수시로 현장을 찾아갑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취임 이후 매달 2회 이상 산업단지를 누빈다. 2월 초엔 달서구 성서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D사 대표가 “회사 앞 도로에 U턴 구간이 설치되면 원자재 운송에 도움 될 것”이라고 건의하자 대구지방경찰청 담당 부서와 수차례 협의해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2006년 8월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현장 민원 해결팀을 만든 이도 김 시장이었다.
‘기업현장 VJ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지역 중소기업 839곳을 찾아가 민원 512건을 접수했다. 이 가운데 67건을 해결했고 143건은 시책에 반영했다. 단시일 안에 풀기 어려운 민원 236건에 대해선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나머지 66건은 해결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 민원은 공장 진입로 가로등 설치 건의 등 비교적 쉬운 일도 있지만 산업용지 분양 등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사안이 적지 않다. 하지만 김 시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끝까지 해결 방안을 찾아보도록 담당 직원들을 독려한다.
이 같은 김 시장의 노력은 대기업 계열사의 대구 진출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포츠의류를 만들어 세계적인 스포츠웨어 회사인 나이키 등에 납품하는 ㈜영원무역의 연구 및 물류센터를 대구에 유치했다. 또 올해 초 선박엔진부품 회사인 STX엔파코,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GMS 등 대기업 계열사와 잇달아 투자유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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