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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사이드] 역대급 폭염에 ‘블랙아웃’ 위기… ‘2011년 대규모 정전사태’ 또 오나

카나메 마도카 2024. 8. 25. 15:56
117년 만에 ‘한 달 연속 열대야’
가축 100만·어류 567만 떼죽음
유엔도 이번 폭염 두고 “전염병”

전기 ‘펑펑’ 전력 수급 ‘아슬아슬’
전력 100GW 돌파 등 신기록 행진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재앙 막아”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적인 폭염이 지속된 가운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고 있다. ⓒ천지일보DB
[핵심요약]

◆열대야 등 폭염 직격 맞은 한국

‘입추(立秋)’가 지나고 일교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는 ‘처서(處暑)’까지 맞았지만 시원한 밤공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폭염으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사병·열탈진·열경련 등을 겪은 온열질환자도 3000명에 육박했다. 전국이 펄펄 끓자 전력사용량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력량 수요 계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2011년 대규모 정전사태와 같은 ‘블랙아웃’이 언제 도래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폭염에 펄펄 끓는 지구촌

전 세계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양과학연구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15일(현지시간) 지중해의 평균 해수면 온도는 섭씨 28.90도에 도달해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까지 가장 높은 온도는 2003년 8월 23일의 28.25도였다. 7월의 지구 평균 표면 온도도 섭씨 17.01도에 달했다. 이는 해양대기청이 관측을 시작한 175년 역사상 최고치다. 이에 따라 미 국립해양대기청 산하 국립환경정보센터는 현재까지와 같은 폭염이 이어진다면 올해가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이 77%에 달한다고 내다봤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17년 만에 최장 폭염’ ‘한 달 내도록 이어진 열대야 신기록’ ‘6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어류 떼죽음’, 그리고 ‘역사상 최초 KBO 야구경기 취소’ 등 행사 줄취소까지…

최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언론으로부터 연일 쏟아져 나오는 표현들이다. 이미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나고 일교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는 ‘처서(處暑)’까지 맞았지만, 여전히 선선한 밤공기란 기대하기 어려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여름은 이른 6월부터 기록을 갈아치우며 시작했다. 지난 6월 서울 한낮 최고기온 평균이 30도를 넘은 데다 강릉 경포해수욕장이 사상 처음으로 6월 말에 개장한 것. 이어 서울에서는 한 달 내도록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지난 1907년 이래 117년 만에 역대 최장 열대야를 맞았고, 부산 등 곳곳에서도 폭염 관련 기록을 경신하며 전국이 펄펄 끓었다.

그 결과 전력사용량도 덩달아 치솟았다. 하루 전력 수요가 연일 역대 최대치를 세우면서 과거 2011년 대규모 정전사태와 같은 ‘블랙아웃’이 언제 도래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여름이 넉 달, 즉 1년 중 1/3 이상 이어지고 폭염이 새로운 여름의 일상이 된 ‘뉴노멀’이 도래했다는 평가다.

◆입추에도 폭염은 ‘현재 진행형’

‘전염병(epidemic)’ ‘슈퍼 핫 열대야(super-hot tropical nights).’

외신은 우리나라의 기록적인 무더위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중 ‘전염병’이란 표현은 유엔(UN) 사무총장의 입으로부터 나왔다. AFP 등 외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닥친 폭염을 두고 안토니오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가 ‘극단적인 무더위 전염병(extreme heat epidemic)’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한 내용을 세상에 알렸다.

더위는 남북을 가리지 않았다. 외신들은 북한이 37도에 달하는 폭염에 주민들에게 경고를 발령했으며, 평양 주민들이 양산과 휴대용 선풍기 등 갖은 도구를 사용해 더위를 식히는 사진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명·가축 피해도 잇따랐다. 폭염으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사병·열탈진·열경련 등을 겪은 온열질환자도 3000명에 육박했다. 20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6월 11일부터 8월 19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2890명, 그중 사망자는 2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501명)보다 389명 많은 규모인데, 질병청이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시작한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가축과 어류들도 떼죽음을 맞았다. 같은 날 기준 가금류 93만 7000마리, 돼지 6만 마리 등 총 99만 7000마리의 가축이 폐사했고 양식장에서도 조피볼락 336만 6000마리 등 567만 2000마리의 어류가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대급 폭염에 기상청은 향후 위기에 대응하고자 사상 처음으로 ‘폭염 백서’를 연내 발간하기로 했다.

◆연일 신기록 갈아치운 전력량

한 달 내도록 열대야 현상이 이어지는 등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13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에 설치된 모니터에 전력수급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2024.08.21.

2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오후 2~3시 한 시간 평균 전력 총수요는 역사상 최고 기록인 103.5GW(기가와트)를 찍었다. 1GW의 발전설비를 통한 발전량은 300kWh를 사용하는 가구 기준으로 약 36만여 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날 전력 총수요는 오전 10~11시 100GW를 돌파하면서 일찌감치 신기록 작성을 예고했다. 전날 사상 최고인 97.1GW 기록에 이어서다. 이날 예비전력은 8.2GW, 예비율은 8.5%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전력 소비량 스펙트럼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일까. 

결론부터 보자면 전력 소비가 많은 나라를 줄 세웠을 때 한국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가 1억명 이상의 나라들을 줄줄이 제친 순위다. 1위는 단연 인도와 함께 14억명이라는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다. 중국은 연간 8539.690TWh(테라와트시)를 사용했다. 테라와트시는 기가와트시의 1000배에 해당한다. 그다음이 미국(4128.177TWh)이다. 미국 뒤로는 인도(1462.874TWh), 러시아(1025.537TWh), 일본(939.314TWh)이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인당으로 나눠보면 한국인은 연간 10.959㎿h(메가와트시)를 사용하며 미국(11.267㎿hh) 다음으로 전력 소비가 많았다. 일본(7.327㎿h), 러시아(6.864㎿h), 중국(5.474㎿h), 인도(1.25㎿h)와 견줘도 월등히 많은 사용량이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전기를 많이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확한 수요 계측도 안돼”

이 같은 위기 상황은 과거 2011년 9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악몽과도 겹친다. 이른바 9.15 정전사태다.

지난 2011년 09월 15일 오후 시기상 가을임에도 고온의 늦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갑작스런 전력 과부하로 전국 곳곳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 TV 화면에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다. (YTN 화면 캡쳐/뉴시스) 2011.09.21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시기상 가을임에도 고온의 늦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갑작스런 전력 과부하로 전국 곳곳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모습 (뉴시스) 2012.09.15

지난해 9월 15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뒤늦게 찾아온 무더위로 전력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는 ‘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전력 수요가 한꺼번에 집중되면서 예비전력이 뚝 떨어지자 전력거래소가 순차적으로 지역별 순환 정전을 시행한 건데, 이로 인해 전국 162만 가구와 신호등, 은행, 병원 등 곳곳에서 전기가 끊기면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등 대혼란에 빠졌다. 당시 겉으로 추산된 피해금액만 600억원이 넘었다.

전력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블랙아웃을 피할 수 있다. 국가 전력 운영이 달린 만큼 정확한 수요 예측과 공급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전력 부족 사태 장기화와 앞으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됨에 따라 블랙아웃의 공포가 또다시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전력량 수요 계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이달 13일은 당시 역사상 가장 높은 전력 수요를 찍었던 날로 오후 5~6시 기준으로 전력 수요는 94.6GW를 기록했다. 이날만 봐도 전력 수요와 실제 총수요는 7.7GW 차이가 난다. 전력 총수요를 따져봤을 때 전력 피크는 오후 2~3시 기준 102.3GW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차이양도 원전 7~8개 호기가 동시에 가동되는 발전량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다.

태양광의 경우 집계가 안 된다는 문제도 있다. 1㎿(메가와트) 이하 한전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자가용 태양광(BTM) 발전 등은 계량되지 않아 실제 전력시장 수요에서 빠진다. 전기사업법상 시장참여 의무 기준이 되는 설비용량(현행 1㎿ 초과)을 하향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AI 시대 맞아 갈수록 태산

무엇보다 앞으로 전력 수요량이 더욱 커질 거란 점에서 우려가 더해진다.

(서울=연합뉴스) 서울 지역 낮기온이 35도를 기록하는 등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9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붉은 보름달 아래에서 밤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2024.8.19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2년 460TWh에서 오는 2026년에는 최대 1050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AI 산업 투자 등과 함께 반도체 산업 발전,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진행 등으로 전력 소비량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력망 투자 규모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망 투자 규모는 2020년 2350억 달러(약 313조원)에서 오는 2030년 5320억 달러, 2050년 6360억 달러(약 847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난달에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오류로 세계 곳곳의 항공·은행·병원·방송 업무가 마비되면서다. 이른바 ‘IT 블랙아웃(정전)’이다. 인터넷과 클라우드(가상 서버)로 묶인 ‘초연결사회’여서 빚어진 일인데, 어느 한 곳에서 대규모 정전이 벌어지면 지구촌 다른 나라에서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행정전산망이 ‘셧다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고 올해도 각종 정부 전산망이 다섯 차례 이상 먹통이 된 바 있다.

 

◆“민관정 차원 절전의식 확대 필요”

이에 정부나 기업의 노력과 함께 민관차원의 인식전환과 절전의식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력 당국은 피크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냉방기 사용을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엔 에어컨 대신 선풍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또 실내 적정온도 26도 유지는 건강도 챙기고 전기도 절약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에어컨 설정 온도는 26도가 적절한데, 냉방 온도를 22도에서 1도씩 올릴 때마다 전력사용량은 4.7%씩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에어컨 필터를 자주 청소하면 공기 순환이 원활해져 전기 사용량이 15%까지 감소하고, 실외기 위쪽에 은박지를 씌우면 실외기 가열을 낮춰 전기를 더 아낄 수 있다는 절약법도 실용적이다.

아울러 전력량 이슈가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전력망확충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 등 에너지 전환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하고 전·수소 등 활용 가능한 모든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폭넓은 정부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이 에너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국 대부분 지역이 폭염으로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에서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