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FM공동체라디오> 104.5MHz 시험 방송
제작자도 DJ도 주민, 곧 개국...안심에서 청취
<안심말> 신문도...기자·취재원 모두 주민
기사는 동네소식, 광고는 정겨운 이웃 얘기들
"마을미디어, 거창하지 않은 동네 이웃의 평범한 일상"
작은 라디오에 세 사람이 모여 귀를 기울인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주의 깊게 듣는다.
"들려요? 잘 들려요? 노래가 끊기네" 김승주 국장이 말했다. 박인규 이사는 "플레이어 문제 아냐?"라고 답한다. 이현경 PD가 "한 곡하고 끝나고 멈춰요. 주욱 다 재생해야 하는데"라고 답한다.
세 사람은 대구 동구 안심지역 주민이다. 그 공통점이 이들을 한 곳에 모았다. 듣고 있는 라디오는 주민들이 만든 공동체 라디오다. 지난 2일 동구 경안로 755(동호동) 4층 건물 작은 라디오 스튜디오 앞에서 이들은 공동체 라디오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듣는 것뿐만 아니다. 본인들 스스로가 라디오를 만들고 있는 당사자, 주인공이다. 스튜디오와 제작실 앞 컴퓨터 화면 플레이리스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잔뜩 걸렸다. 제작자도, 청취자도 주민인 라디오를 직접 만드는 현장이다.
초보 라디오 제작자인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라디오 시험방송을 주의 깊게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직 잘 모르고 어려운 게 많다. 그들 뒤로 '주간 편성표'가 붙었다. 월간안심, 와글와글 뮤직박스, 인디음악, 엄마들 이야기, 건강, 사진관 등 프로그램 제목들이 주간 단위로 복잡하다.
대구 동구 안심마을 주민들이 공동체라디오와 동네신문 등 '마을미디어'를 직접 만들고 있다. 이야기 주제는 동네 이야기다. 프로그램이나 기사로 만들어내는 당사자는 주민이다. 마을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누구나 어디서나 듣거나 볼 수는 없다. 그 마을에 가야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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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창순)'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우리동네 방송'을 슬로건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파수 104.5MHz '대구동구FM공동체라디오' 전파를 쏘고 있다.
안테나를 세운 지난해 12월 26일부터 4일까지 시험 방송 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체라디오로 승인하고 4일 전파관리소가 준공검사를 해 정규방송을 해야하지만 준비할 게 많다. 공동체라디오를 신규 승인한 것은 15년 만이다. 이번에 전국 27곳으로 늘었다. 대구는 성서FM, 동구FM 2곳 뿐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동네 주민 10여개 팀은 각자 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 열심히 프로그램을 녹음하고 있다. 오는 2~3월 정식 라디오 방송국 개국식을 갖고 동네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이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곳은 동대구IC에서 경산지역까지다. 안심 1~4동, 혁신동 일대에서 들을 수 있다. 전파 출력이 10와트 밖에 안돼 동구 전체에서는 들을 수 없다. 가청 인구는 안심지역 12만여명이다. 스마트폰에서 '와우라디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검색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해당 지역에서는 지금도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면 들을 수 있다. 안테나를 세운 첫날 각 지역에서 "아아~방송 들립니까?", "네 들립니다", "아직 지직 지직거립니다"하는 전화가 쇄도했다.
라디오 스튜디오를 차리고, 장비를 사고, 모두 협동조합에 소속된 주민들이 지불했다. 협동조합에 가입하면 누구나 동구FM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조합원 40여명은 안심지역 주민들이다. 현재 실무는 박인규 와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와 김승주 사무국장, 이현경 PD가 담당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부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앞으로 라디오를 만들어간다.
공동체라디오는 방송법상 시사 방송은 할 수 없다. 공익 목적으로 허가 받은만큼 앞으로 동네 소식, 동네 주민 이야기 등을 주력으로 내보낸다. 전문 DJ나 방송인이 아닌 옆집 아저씨, 학생이 DJ가 돼 방송을 만든다. 동구FM의 시초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심지역의 '마을문화공작소 와글'은 동네 음악회를 80회 가까이 진행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유튜브에 '와글' 채널을 만들어 비대면 음악회, 마을축제를 열었다. 동구FM의 모태다.
앞으로 주민들의 방송국으로 살아남기 위한 핵심은 역시 재정 자립이다. 방통위가 올해 공동체라디오 예산을 0원으로 전액 삭감한 탓에 수익을 창출해 스스로 살아남야야 한다. 비영리단체인 탓에 따로 수익사업을 할 수 없어 동네주민들의 5초, 10초, 1분짜리 광고라도 싼값에 받을 계획이다. 생일축하, 결혼기념, 식당개업 등 동네와 관련한 광고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김승주 국장은 벌써 악몽을 꾼다. 라디오 방송 사고 꿈이다. 그는 "안하던 일이라 과부하가 걸린다"며 "하나 하나 배우는데 이러다 사고를 낼까봐 미칠 것 같다. 밤마다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라디오 개국 과정 자체가 즐거운 사람도 있다. 박인규 이사는 "안심지역이 사회적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이 오고싶어 하는 동네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오면 지역 라디오도 있다하는 자부심을 주고 싶다"며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 어린이, 장애인 등 평범한 우리 주민들,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이 되는 라디오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방송국들처럼 고상하고 꾸며내고 어려운 말이 아니라 우리 지역 사투리도 쓰고,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일단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많이 조합원으로 가입해달라"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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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오후 동구 이노밸리로46길 1층 혁신도시 카페 사람이야기에서는 작은 편집회의가 열렸다. 주인공은 역시 안심지역 주민들이다. 앞서 라디오에 이어 이번엔 종이신문을 만들고 있다.
"그때 너무 길다고 3분의 1로 잘랐잖아. 글이 그냥 다 날아갔어" 양희 발행인이 말하자, 김민규 기자가 "맞다. 처음이어서 너무 어려웠다. 원고 마감 전인데 분량 조절이 안돼서 그랬던 것 같다"고 기억을 떠올린다. 앞에 펼쳐진 지난 신문들을 들춰보며 직접 뛰었던 현장의 취재기를 이야기한다.
<안심말>은 안심마을 주민들이 만든 마을신문이다. 지난해 10월 20일 창간준비호 1호에 이어 12월까지 창간준비호 3호를 발간했다. 신문의 슬로건은 '지역의 이야기를 마을사람의 시선으로'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안심말창간준비위원회'다. 매달 1회씩 나오는 월간지 형태다. 양희 발행인, 박지훈 편집인을 중심으로 김정화, 윤문주, 김수민, 박기영, 김민규 등 안심마을 주민 7명이 매달 두번씩 편집회의를 통해 마을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모두 본 직업은 따로 있다.
취재원도, 기자도 모두 주민이다. 기사거리도 취재현장도 안심마을 관련한 내용이다. 창간호 1면 기사는 <안심마을주민들의 팔현습지 탐방>이다. 2호, 3호 헤드라인 기사도 <안심마을축제의 현장을 가다>, <2023년 안심마을 협동 김장> 등 동네 이야기다. 마을 반상회 기사도 실렸다.
안심마을공동체 안심마을사람의 이화선 운영위원장, 안심협동조합 청년들, 대구발달장애인연대 이성민 전 회장 등 인터뷰 역시 동네 사람들의 말을 전한다. 문화 코너에는 동네 어린이의 동시를 비롯해 주민이 제작한 4컷 만화를 담았다. 우리동네 별미탐방, 맛집 코너도 인상적이다.
광고란도 기존과 다르다. "우리 딸 화이팅~엄마가", "부인 고맙소~남편이", "집 나간 여권 찾습니다", "제 공연 보러오세요", "아들 백일장 최우상 축하해", "마을김장 합니다", "50대 1인가구 남성 모임 참가자 모집" 1만원~10만원짜리 작은 광고들이 많다. 딱 신문을 인쇄할 수 있을만큼 수익이다.
현재 2024년 신년특집으로 창간준비 4호를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갑진년을 맞아 용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용띠 주민들을 찾기 위해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소문을 하고 있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 동네의 평범한 일상이 이 신문의 8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거창하고 어려운 정치나 사회 문제는 이 동네 신문에 없다. 마을공동체, 기후위기, 환경 등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뿐이다. 신문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1년이 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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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기사를 써본적도, 취재를 해본적도 없는 주민들이 신문을 만드려니 모르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하고 싶으면 일단 해보고, 수정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안심마을의 동구주민회, 안심협동조합, 한사랑주간보호센터, 공터사회적협동조합, 마을학교둥지, 반야월대동계 등 20여개의 마을단체가 마을신문 동력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독 공동체가 살아있는 안심의 특성상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걱정은 기우였다. 8페이지는 금방 채워졌다. 매달 동네 행사가 있고, 전할 말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소식을 궁금해 이들도 늘어났다.
<안심말>은 행정복지센터를 포함해 지역 카페, 식당, 협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수천부씩 인쇄해 배포하고 있다. 주민 누구나 무료로 이달의 안심말 신문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기자들도 편집회의를 할 때면 기분이 좋다. 이제는 길을 지날 때마다 취재거리가 보인다.
공동체 가치관이 희미해져가는 시대에 마을에 모여 함께 행사를 치르고 이웃 소식에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귀하다. 20년 가까이 안심(安心)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안심말' 신문에 이웃얼굴과 말, 행사 내용 등 마을 역사 전체를 담을 예정이다. 목표는 욕심내지 않고 오래 이어가기다.
양희 발행인은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내가 우리가 돼 오랫동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잊혀지고 지워지고, 참 많은 추억과 일들이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일이 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또 "안심마을은 유명한 누구, 특정한 누구의 안심이 아니라, 그 때 함께한 당신 각자의 안심"이라며 "한명 한명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부터 안심말 신문을 통해 마을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 그 역사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안심말 신문을 기다리고, 이곳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사랑받는 신문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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